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을까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함께 읽기
8월31일 비내리는 8월의 마지막날 하쿠나 마타타 는
꿈마을도서관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첫 이야기는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남은 느낌을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로고테라피’, ‘질문-(자기자신에게 자꾸 질문하게 된다.)’'살아가는 이유’라는 말이 나왔고, 프랭클이 이야기한 ‘선택하는 자유’를 이야기 한 분도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게서 정말 마지막까지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인간의 존엄’, ‘정신’, ‘생각’, ‘신앙’, ‘마음’, ‘자아’….
조금씩 다른 단어였지만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답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로 이어졌습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지금 나에게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주민연대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신앙, 또 다른 누군가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인간도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이고 살아가는 것, 생존 자체가 본능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은 모두 달랐습니다.
어쩌면 프랭클이 이야기한 삶의 의미도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가, 함께 살아가는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힘들 때 찾아가거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사람이나 공간이 있나요?”
“있다”고 답한 분들이 있었고, 주민연대와 교회처럼 구체
적인 공간을 떠올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반면 “없다”는 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어려움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마지막에는 자기 몫으로 남는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사람에게 공동체와 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결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들으며 다시 질문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 삶이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프랭클의 생각을 빌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지금 나에게 삶이 묻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 잘 살고 있니?”
“괜찮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니?”
그리고 각자의 답도 이어졌습니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살아가려고 충분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거창한 답이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의 독서토론으로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정답을 갖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고, 다시 나의 삶을 바라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을까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함께 읽기
8월31일 비내리는 8월의 마지막날 하쿠나 마타타 는
꿈마을도서관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첫 이야기는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남은 느낌을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로고테라피’, ‘질문-(자기자신에게 자꾸 질문하게 된다.)’'살아가는 이유’라는 말이 나왔고, 프랭클이 이야기한 ‘선택하는 자유’를 이야기 한 분도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게서 정말 마지막까지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인간의 존엄’, ‘정신’, ‘생각’, ‘신앙’, ‘마음’, ‘자아’….
조금씩 다른 단어였지만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답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로 이어졌습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지금 나에게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주민연대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신앙, 또 다른 누군가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인간도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이고 살아가는 것, 생존 자체가 본능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은 모두 달랐습니다.
어쩌면 프랭클이 이야기한 삶의 의미도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가, 함께 살아가는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힘들 때 찾아가거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사람이나 공간이 있나요?”
“있다”고 답한 분들이 있었고, 주민연대와 교회처럼 구체
적인 공간을 떠올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반면 “없다”는 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어려움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마지막에는 자기 몫으로 남는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사람에게 공동체와 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결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들으며 다시 질문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 삶이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프랭클의 생각을 빌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지금 나에게 삶이 묻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 잘 살고 있니?”
“괜찮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니?”
그리고 각자의 답도 이어졌습니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살아가려고 충분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거창한 답이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의 독서토론으로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정답을 갖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고, 다시 나의 삶을 바라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